백색의 증거 上 (현실AU)



  오늘도 역시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이제 와서 자신이 몰랐던 그의 일부를 발견하는 것은 사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흥분되는 일이었고, 어느 때는 억울하기도 했으며, 여러 번의 추궁과 실망 끝에 이제는 태연해 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그가 알고 있던 사카타 긴토키를 재정의해야 할 만큼의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머리칼은 타고난 은발이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색이라기엔 뿌리 끝부터 시작하는 백색이 너무나 뚜렷했으며, 탈색 모발 특유의 탁함이나 누런 끼도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람에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와 자연스럽게 섞이는 그 색을 보며, 내가 만지면 부서질 수도 있어, 히지카타는 과 동기로서 그를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 두었다. 감히 그의 은발에는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그가 의식하며 행동하지 않아도 긴토키 또한 자신의 은발에 손을 대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건 부탁이라기 보단 일방적인 거부나 과민 반응에 가까웠다. 어깨 위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떼어내거나, 등 뒤에서 차분히 감싸 안을 때, 유난히 빨개진 귀를 살짝 건들이며 별 의미 없이 은발에 손이 스치기라도 하면, 평소엔 늦된 그라도 무섭게 화를 내며 히지카타를 밀치곤 했다. 서운했지만, 긴토키의 거부가 습관적으로 반복되면서 그것 또한 이내 수긍해 버렸다. 더 신경 쓰기 귀찮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주변에선 히지카타가 그에게 반쯤은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색이 예뻐. 어떻게 사람 머리색이 은색일 수 있지?”

  만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번은 히지카타가 슬쩍 운을 뗀 적이 있다. 그 때는 이미 긴토키의 발작적 반응을 알고 있던 터라, 대화는 되도록 조심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투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것처럼 시작해야 했다. 독촉하지도 말아야 했다. 자신이 관심 없는 일엔 상대방이 질문을 한 것을 잊을 때 쯤 반응해주는 그였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소파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그는 히지카타가 부엌 한 번, 화장실 한 번을 다녀와 소파 앞에 앉을 때가 돼서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 그러게. 왜일까.”

  의뭉스러운 반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너무하네. 그를 타박하며 히지카타는 긴토키 몰래 그의 은발에 손을 뻗었다. 물론 닿을 순 없다. 그저 멀리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하듯 움직이는 것이 그가 은밀하게 즐길 수 있는 스킨십의 전부였다. 곱슬의 물결을 따라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번엔 좀 더 직접적으로 던져보았다.

“원래부터 은발이었어?”

  히지카타의 손목이 갑작스레 잡힌 건 그 때였다. 하마터면 부끄러울 정도로 놀란 티를 낼 뻔 했다. 다행이 긴토키는 그 정도 장난에는 관대하다는 듯 이내 손을 놓아주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로 물러난 그의 가슴팍을 두어 번 두들겼다.

“염색은 아니야. 그런 거 해본 적 없어.”

  그 말을 멋대로 해석해 그 때부터 사카타 긴토키의 은발은 타고난 거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타고난 은발’이라는 것 자체가 동양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납득했던 건, 눈동자나 피부색은 둘째 치고, 선을 긋는 듯한 그의 단호한 대답과 내젓는 손짓이 주 이유였을 것이다. 무튼 이유야 어찌됐든 히지카타는 이전의 발견과 질문, 돌아오는 대답에 수긍했던 수순을 따라 그의 은발에 대해서도 그렇게 결론 내리고 지금까지 함구해 왔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머리를 감겨 달라는 긴토키의 말이 히지카타는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행동이 느린 그를 위해 긴토키의 아침 일과를 챙기는 것은 그가 기꺼이 자처한 일이기에 사소한 부탁과 요구는 일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은발을 만질 수 있게 한다는 것, 그것도 끈질긴 요청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인 제안에 가깝다는 것이 유치하게도 히지카타를 벅차게 했다.

“왜, 싫어?”

  당황스러움이 기쁨이 될 때쯤, 이번에는 자신의 반응이 늦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하거나 기쁠 때도 유난스럽게 표현하지 말 것. 큰 기복이 없는 긴토키를 따라 히지카타 또한 자연스럽게 익힌 감정 표현 방식이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긍정을 표현하고, 아무렇지 않게 티셔츠 소매를 걷고, 조금은 귀찮다는 듯이 욕실에 따라 들어가야 했다.

  예상대로 부드러웠다. 생각보다는 가늘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풍성한 은발이 한 움큼씩 잡힐 때마다 단이 낮은 욕실 의자에 앉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긴토키의 뒷모습까지 완벽했다. 몇 번이고 조심스럽게 은발을 매만지며, 히지카타는 그제 서야 지난 일 년 간 자신이 가졌던 의심과 조바심이 기우였음을 확신했다.

  히지카타가 분노하면 되려 웃던 그였다. 히지카타가 뒤를 쫓으면 결코 기다리지 않던 그였다. 쟤 좀 이상해. 과 동기들 사이에서 우울증이라느니 약을 한다느니, 온갖 소문이 돌고 또 그게 사실이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항상 옆에 있어도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마저 아끼던 그였다. 이제야, 몇 번이고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입을 맞추고, 몸을 섞었어도 느낄 수 없었던 감격이 이 작은 행위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긴토키의 뒷머리를 쓸어 올릴 때쯤 히지카타가 발견한 건 드문드문 비져 나와 선명하게 자리 잡은 검은색 머리칼이었다.









+ 원래는 흑발인 긴토키의 머리가 어떠한 이유로 하얗게 새어버렸다는 떡밥은 쓰고 싶은데 동시에 백야차라는 별명이 너무 좋아 이를 망치지 않기 위해 결국 선택하게 된 것 = 현실AU입니다.
+ 상/하로 구성되어 있고, 글 맥락상 여기서 끊었으나 하편은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제 존잘님 로렌님(@laureney_)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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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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