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소재, 짧은 글 *

 

 

 

기다리는 오늘

 

 

  하이바 리에프는 불안했다. 지금 막 쿠로오의 집에 들어선 그의 앞에, 이맘때쯤의 익숙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로오 테츠로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무거운 커튼보다 더 두텁게 가라앉은 먼지들이 털렸다. 곧 창문이 열렸다. 다행이 불어온 바람은 묵은 먼지를 반쯤은 휩쓸어 가주었다. 다음은 간이 식탁이었다. 쿠로오의 손은 망설임 없이 쓰레기를 분류했다. 중간 중간 흩어진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리에프의 불안함은 숨길 수 없는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이는 하얀 살점의 거스러미가 지저분하게 불어 오른 리에프의 손가락들이 증명해줬다.


  리에프는 자신의 짐을 현관 께에 두었다. 쿠로오는 여전히 그의 등장을 알지 못한 듯 이제는 리에프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다. 멀쩡한 물건들이 쓰레기통에 담겼다. 어제 읽은 책, 그제 사다 둔 탁상시계, 저번 주에 함께 고른 옷. 순서를 정해야했다. 이름, 손, 그것도 아니면 청소. 역시 불러 세우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쿠로오를 찾는 급한 손이 동시에 나갔다.


“쿠로상, 오늘 뭐 즐거운 일, 있나 봐요?”

 

  리에프의 목소리는 꽤 밝았다. 되도록 아무렇지 않게 불러야했다. 이는 반복된 경험에서 비롯된 버릇이자 자기방어였다. 매 순간 리에프는 기대를 했다. 오늘은 쿠로오의 대답이 다를지도 몰랐다. 자신의 방문을 위한 준비였다는 대답은 사치스러웠다. 모든 집안일을 리에프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미안했노라고, 그래서 오늘만큼은 자신이 나섰다는 말이면 충분했다. 이제 괜찮아. 지난 삼년간 리에프가 쿠로오에게 요구했던 반응은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리에프는 쿠로오에게 다시 기대를 했다.

 

“오늘 보쿠토 돌아오는 날이잖아.”

 

  그러나 대답은 깔끔한 거절이었다


  쿠로오의 망상은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이가 ‘그 날’이면 보쿠토를 찾았다. 과거의 연인에 대한 예의인지 미안함인지, 혹은 그가 정말 보쿠토의 귀가를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부러 하는 행동인지 이제는 구분조차 어려웠다. 차라리 쿠로오의 행동이 병적이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을 재우고 꿈을 일깨우는 순간의 단절은 무섭도록 정확했다. 그렇기에 리에프는 말해주어야 했다. 쿠로오의 망상에 어울려주기엔 여름 어디쯤의 수요일은 이미 세 번이나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보쿠토상, 안 와요.”
“뭐? 무슨 말이야?”
“보쿠토상, 이제 안 와요. 쿠로상.”

 

  쿠로오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리에프는 숙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면, 자신의 기억을 헤집는 것을 마친 쿠로오는 스스로 수긍하리라.

 

“아...”

 

  그의 깨달음은 항상 짧은 감탄사로 시작했다.

 

“맞아.”

 

  단 번에, 바닥으로 시선이 떨어졌다.

 

“그랬었지.”

 

  이제 부정의 단계는 생략됐다. 근 이년간 리에프가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성과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리에프는 쿠로오의 반응이 더 서러운 표정의 자신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여전히 알지 못했다. 매번 새롭게 보쿠토의 죽음을 인정해야 하는 쿠로오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찾고, 그의 죽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다시 그를 찾아 나섰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보쿠토의 죽음은 쿠로오를 몇 번이고 원점에 주저 앉혔다.

 

“내가 대신하면 안돼요?”

 

  오늘도 리에프는 무릎을 꿇었다. 쿠로오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애원했다. 결국 반복이었다. 내가 잘할게요. 내가 노력할게요. 다짐과 같은 혼잣말이 이어졌다. 쿠로오는 언젠가 자신이 전 연인에 대한 망상으로 말라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애절한 마지막도 없었다. 그만큼 보쿠토의 죽음은 깨끗한 것이었다. 그러나 쿠로오에게 ‘알고 있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달랐다. 보쿠토 코타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누군가의 몫이라면, 그의 부재를 매순간 실감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리에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동정심으로 그 시기를 늦추는 것일 뿐이었다. 알잖아.

 

“나는 널 누구 대신이라고 생각해 본적 없어.”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쿠로오의 입술이 리에프의 손을 덮었다. 그의 양 엄지는 물에 불린 듯, 새하얗게 너덜거리는 지저분한 거스러미들로 가득했다. 원체 흰 피부의 리에프이기에 상처는 더욱 아파보였다. 새살이 돋아날 시간도 채 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동시에,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리에프에게 긍정의 답을 주지 않는 스스로에게 경멸을 느꼈다.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리에프는 리에프지.”

 

  지금의 최선이었다.

 

“그래서 보쿠토도 보쿠토인거야.”
 

  언제나의 대답이었다.

 

  커지는 울음소리 속에서 쿠로오는 생각했다. 내일이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출근을 할 것이고 리에프는 연습을 나갈 것이다. 그 사이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른다. 엇비슷한 시간에 귀가를 해 함께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고, 웃고 떠들다 누구보다 깊게 서로를 끌어안고 잠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내일을 기다리기에 두 사람에게 오늘의 여름은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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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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