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긴] 시작의 끝

연성 2017. 1. 11. 19:08 |

* 약한 신체훼손, 사망소재, 짧은 글 주의해 주세요 *


 

 

시작의 끝

 


1.
  히지카타 토시로가 죽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기 찬 여름이었다. 그의 죽음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었다. 태양은 뜨거웠다. 매미는 시끄러웠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온몸을 사납게 찔러댔다. 모두가 울길 바랐지만 누구도 울지 않았다. 첫 번째 장례식은 진선조의 것이었다. 부장이라는 그의 이름에 걸맞은 꽤나 성대한 식이었다. 이틀 밤낮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차분한 애도의 행렬을 이어갔다. 두 번째 장례식은 사카타 긴토키의 몫이었다. 삼일 째 밤, 진선조는 온전히 그를 위한 자리를 내주었다.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암묵적인 동의하에서였다. 어둔 방은 그만큼의 짙은 향내와 죽은 것의 냄새로 가득했다. 긴토키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히지카타의 곁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정확하게는 히지카타의 검, 그의 사복 꾸러미와 함께였다. 그것들을 가지런히 일렬로 늘어놓은 모습은 흡사 의식과도 같았다. 딱히 괴로워하거나 슬퍼보이지도 않았다. 혹자는 그가 히지카타의 죽음에 분개해 검을 들 것이라 장담했고, 더러는 처절한 오열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믿음을 배신하듯, 긴토키는 누구보다 단정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카타 긴토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2.
  사내에 대한 소문은 몇 년에 걸쳐 부풀었고, 누락되거나 잠시간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등장해 낭인들의 본거지를 몰살한다는 누추한 사내의 이야기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근근이 회자됐다. 우연히 사내를 목격한 치들은 오래전 양이지사들의 활약을 더듬어 그를 ‘백야차’라 불렀다. 물론, 그들이 기억하는 백야차와의 공통점은 오로지 백발뿐이었다. 이마저도 소문을 거듭할수록, 산발에 뒤엉킨 머리칼은 회색빛에 가까워졌다. 걸치고 있는 옷은 여러 번 덧대 그 원형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온몸을 휘감은 붕대는 사내의 정체를 더욱 모호하게 했지만, 확실한 것은 얼굴의 반쪽이 화상으로 일그러져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검은 부러 살아온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였는데, 그 때문인지 칼날은 불투명한 검은색을 띄었고, 왼손에는 단단하게 동여맨 짐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그래서? 다음은? 호기심이 동한 누군가의 독촉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3.
  단칼이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옮기는 발걸음은 쌓인 눈이 덮었고, 내지르는 비명은 또 다른 비명이 덮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낭인들의 소탕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이 반나절을 위해 걸은 날들이었다. 이 반나절을 위해 버린 목숨이었다. 눈과 흙먼지에 뒤엉킨 사체들을 까마귀 떼가 덮었다. 흰 것과 붉은 것 사이에 검은 점이 박힌 기괴한 모습이었다.
  한 가운데 긴토키가 섰다. 자랑스레 펼쳐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상석은 히지카타에게 내준 채였다. 홀연히 흔들리는 백골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까닥거리며 무릎 꿇은 긴토키를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간의 고요. 그것은 서로를 위한 추모와도 같았다. 히지카타의 일부이면서 히지카타가 아닌 그것을, 긴토키는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히지카타, 입이 열렸다. 히지카타, 재차 호명하는 목소리엔 먹먹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끝이다. 그 이상의 말은 무의미했다. 함께 생을 이어가자는 말도, 죽음으로 무언가를 이루자는 다짐도,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서로의 마지막을 조용히 품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결말이었다.

 

  사카타 긴토키가 죽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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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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