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자 히지긴

짧은글 2015. 11. 8. 03:00 |

  오늘도 알람이 울렸지만 정작 몸을 일으킨 건 그보다 수 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밤새 열어둔 문틈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 같더니 그 주변 마룻바닥은 흠뻑 젖고, 쌓아놓은 책 더미 사이로는 물이 고여 있었다. 추웠다. 껴안고 자던 스웨터를 꿰입었다. 엉거주춤 옮기는 발걸음에 채이는 것은 언젠가 던져 둔 음식물 봉지와 치우지 않은 쓰레기, 옷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제 청소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원래부터 중요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에 질색할 이가 없으니 중요하지 않은 게 맞는 거 같다. 목이 말랐다. 싱크대 수도를 트니 나오는 게 없었다. 엊그제인가 집주인이 찾아와서 조금은 화를 내며, 더는 집세를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젊은 총각이 이러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러면 안 된다. 정신 차려라. 걔는 죽었잖아. 너 언제까지 그럴 거야. 생존확인이라며 쳐들어온 ‘당번’들이 그랬다. 사실 이 방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달랬지만 이내 화를 냈고, 결국에는 모두 울면서 자리를 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 자신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사실 이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게 보다 직접적인 두 번째 이유였다. 억울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또 다시 울고 싶어져, 입고 있던 옷을 끌어올려 코끝으로 가져간다. 이제는 눅은 냄새만 붙어 있는 검붉은 얼룩의 빛바랜 스웨터. 몇 년 전 그의 생일선물로 주었던 옷이다. 이를 쥐고 한껏 숨을 들이키면 누구보다 행복했다. 사랑해. 히지카타. 사랑한다. 수없이 들어왔던 고백에 뒤늦게나마 대답하면, 정말이지 누구도 위로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당신은 히지긴(으)로 「투명한 방」(을/를) 주제로 한 420자의 글 or 1페이지의 그림을 연성합니다. https://kr.shindanmaker.com/444945

 

사실 죽은 히지카타와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인정해서 못 견디고 스스로를 가둔 긴토키를 쓰고 싶었음. 그러나 '한 번도 잠겨 있었던 적이 없지만 오늘도 나가는 이 없는 방'이라고 해서 '투명한 방'이라고 생각하는 건 역시 나 뿐이겠지. 하하하....그냥 투명한 방에 남창 긴토키 가둬두고 쇼 하는 거 쓰는게 보다 빠르고 정확했을 것 같다... 이번 420자는 실패...ㅠㅠㅠㅠ

Posted by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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