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소재, 짧은 글 *

 

 

 

기다리는 오늘

 

 

  하이바 리에프는 불안했다. 지금 막 쿠로오의 집에 들어선 그의 앞에, 이맘때쯤의 익숙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로오 테츠로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무거운 커튼보다 더 두텁게 가라앉은 먼지들이 털렸다. 곧 창문이 열렸다. 다행이 불어온 바람은 묵은 먼지를 반쯤은 휩쓸어 가주었다. 다음은 간이 식탁이었다. 쿠로오의 손은 망설임 없이 쓰레기를 분류했다. 중간 중간 흩어진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리에프의 불안함은 숨길 수 없는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이는 하얀 살점의 거스러미가 지저분하게 불어 오른 리에프의 손가락들이 증명해줬다.


  리에프는 자신의 짐을 현관 께에 두었다. 쿠로오는 여전히 그의 등장을 알지 못한 듯 이제는 리에프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다. 멀쩡한 물건들이 쓰레기통에 담겼다. 어제 읽은 책, 그제 사다 둔 탁상시계, 저번 주에 함께 고른 옷. 순서를 정해야했다. 이름, 손, 그것도 아니면 청소. 역시 불러 세우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쿠로오를 찾는 급한 손이 동시에 나갔다.


“쿠로상, 오늘 뭐 즐거운 일, 있나 봐요?”

 

  리에프의 목소리는 꽤 밝았다. 되도록 아무렇지 않게 불러야했다. 이는 반복된 경험에서 비롯된 버릇이자 자기방어였다. 매 순간 리에프는 기대를 했다. 오늘은 쿠로오의 대답이 다를지도 몰랐다. 자신의 방문을 위한 준비였다는 대답은 사치스러웠다. 모든 집안일을 리에프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미안했노라고, 그래서 오늘만큼은 자신이 나섰다는 말이면 충분했다. 이제 괜찮아. 지난 삼년간 리에프가 쿠로오에게 요구했던 반응은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리에프는 쿠로오에게 다시 기대를 했다.

 

“오늘 보쿠토 돌아오는 날이잖아.”

 

  그러나 대답은 깔끔한 거절이었다


  쿠로오의 망상은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이가 ‘그 날’이면 보쿠토를 찾았다. 과거의 연인에 대한 예의인지 미안함인지, 혹은 그가 정말 보쿠토의 귀가를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부러 하는 행동인지 이제는 구분조차 어려웠다. 차라리 쿠로오의 행동이 병적이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을 재우고 꿈을 일깨우는 순간의 단절은 무섭도록 정확했다. 그렇기에 리에프는 말해주어야 했다. 쿠로오의 망상에 어울려주기엔 여름 어디쯤의 수요일은 이미 세 번이나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보쿠토상, 안 와요.”
“뭐? 무슨 말이야?”
“보쿠토상, 이제 안 와요. 쿠로상.”

 

  쿠로오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리에프는 숙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면, 자신의 기억을 헤집는 것을 마친 쿠로오는 스스로 수긍하리라.

 

“아...”

 

  그의 깨달음은 항상 짧은 감탄사로 시작했다.

 

“맞아.”

 

  단 번에, 바닥으로 시선이 떨어졌다.

 

“그랬었지.”

 

  이제 부정의 단계는 생략됐다. 근 이년간 리에프가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성과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리에프는 쿠로오의 반응이 더 서러운 표정의 자신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여전히 알지 못했다. 매번 새롭게 보쿠토의 죽음을 인정해야 하는 쿠로오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찾고, 그의 죽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다시 그를 찾아 나섰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보쿠토의 죽음은 쿠로오를 몇 번이고 원점에 주저 앉혔다.

 

“내가 대신하면 안돼요?”

 

  오늘도 리에프는 무릎을 꿇었다. 쿠로오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애원했다. 결국 반복이었다. 내가 잘할게요. 내가 노력할게요. 다짐과 같은 혼잣말이 이어졌다. 쿠로오는 언젠가 자신이 전 연인에 대한 망상으로 말라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애절한 마지막도 없었다. 그만큼 보쿠토의 죽음은 깨끗한 것이었다. 그러나 쿠로오에게 ‘알고 있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달랐다. 보쿠토 코타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누군가의 몫이라면, 그의 부재를 매순간 실감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리에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동정심으로 그 시기를 늦추는 것일 뿐이었다. 알잖아.

 

“나는 널 누구 대신이라고 생각해 본적 없어.”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쿠로오의 입술이 리에프의 손을 덮었다. 그의 양 엄지는 물에 불린 듯, 새하얗게 너덜거리는 지저분한 거스러미들로 가득했다. 원체 흰 피부의 리에프이기에 상처는 더욱 아파보였다. 새살이 돋아날 시간도 채 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동시에,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리에프에게 긍정의 답을 주지 않는 스스로에게 경멸을 느꼈다.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리에프는 리에프지.”

 

  지금의 최선이었다.

 

“그래서 보쿠토도 보쿠토인거야.”
 

  언제나의 대답이었다.

 

  커지는 울음소리 속에서 쿠로오는 생각했다. 내일이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출근을 할 것이고 리에프는 연습을 나갈 것이다. 그 사이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른다. 엇비슷한 시간에 귀가를 해 함께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고, 웃고 떠들다 누구보다 깊게 서로를 끌어안고 잠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내일을 기다리기에 두 사람에게 오늘의 여름은 너무 길었다.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지긴] 시작의 끝  (0) 2017.01.11
[보쿠로리에] 어설픈 시간  (0) 2016.04.14
[히지긴] 추락하는 무게 (현실AU)  (0) 2016.01.06
[히지긴타카] 반쪽씩  (0) 2015.12.13
[타카긴] 벌레들  (4) 2015.10.24
Posted by Hani
:

[히지긴] 시작의 끝

연성 2017. 1. 11. 19:08 |

* 약한 신체훼손, 사망소재, 짧은 글 주의해 주세요 *


 

 

시작의 끝

 


1.
  히지카타 토시로가 죽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기 찬 여름이었다. 그의 죽음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었다. 태양은 뜨거웠다. 매미는 시끄러웠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온몸을 사납게 찔러댔다. 모두가 울길 바랐지만 누구도 울지 않았다. 첫 번째 장례식은 진선조의 것이었다. 부장이라는 그의 이름에 걸맞은 꽤나 성대한 식이었다. 이틀 밤낮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차분한 애도의 행렬을 이어갔다. 두 번째 장례식은 사카타 긴토키의 몫이었다. 삼일 째 밤, 진선조는 온전히 그를 위한 자리를 내주었다.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암묵적인 동의하에서였다. 어둔 방은 그만큼의 짙은 향내와 죽은 것의 냄새로 가득했다. 긴토키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히지카타의 곁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정확하게는 히지카타의 검, 그의 사복 꾸러미와 함께였다. 그것들을 가지런히 일렬로 늘어놓은 모습은 흡사 의식과도 같았다. 딱히 괴로워하거나 슬퍼보이지도 않았다. 혹자는 그가 히지카타의 죽음에 분개해 검을 들 것이라 장담했고, 더러는 처절한 오열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믿음을 배신하듯, 긴토키는 누구보다 단정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카타 긴토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2.
  사내에 대한 소문은 몇 년에 걸쳐 부풀었고, 누락되거나 잠시간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등장해 낭인들의 본거지를 몰살한다는 누추한 사내의 이야기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근근이 회자됐다. 우연히 사내를 목격한 치들은 오래전 양이지사들의 활약을 더듬어 그를 ‘백야차’라 불렀다. 물론, 그들이 기억하는 백야차와의 공통점은 오로지 백발뿐이었다. 이마저도 소문을 거듭할수록, 산발에 뒤엉킨 머리칼은 회색빛에 가까워졌다. 걸치고 있는 옷은 여러 번 덧대 그 원형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온몸을 휘감은 붕대는 사내의 정체를 더욱 모호하게 했지만, 확실한 것은 얼굴의 반쪽이 화상으로 일그러져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검은 부러 살아온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였는데, 그 때문인지 칼날은 불투명한 검은색을 띄었고, 왼손에는 단단하게 동여맨 짐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그래서? 다음은? 호기심이 동한 누군가의 독촉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3.
  단칼이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옮기는 발걸음은 쌓인 눈이 덮었고, 내지르는 비명은 또 다른 비명이 덮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낭인들의 소탕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이 반나절을 위해 걸은 날들이었다. 이 반나절을 위해 버린 목숨이었다. 눈과 흙먼지에 뒤엉킨 사체들을 까마귀 떼가 덮었다. 흰 것과 붉은 것 사이에 검은 점이 박힌 기괴한 모습이었다.
  한 가운데 긴토키가 섰다. 자랑스레 펼쳐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상석은 히지카타에게 내준 채였다. 홀연히 흔들리는 백골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까닥거리며 무릎 꿇은 긴토키를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간의 고요. 그것은 서로를 위한 추모와도 같았다. 히지카타의 일부이면서 히지카타가 아닌 그것을, 긴토키는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히지카타, 입이 열렸다. 히지카타, 재차 호명하는 목소리엔 먹먹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끝이다. 그 이상의 말은 무의미했다. 함께 생을 이어가자는 말도, 죽음으로 무언가를 이루자는 다짐도,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서로의 마지막을 조용히 품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결말이었다.

 

  사카타 긴토키가 죽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에쿠로] 기다리는 오늘  (0) 2017.07.28
[보쿠로리에] 어설픈 시간  (0) 2016.04.14
[히지긴] 추락하는 무게 (현실AU)  (0) 2016.01.06
[히지긴타카] 반쪽씩  (0) 2015.12.13
[타카긴] 벌레들  (4) 2015.10.24
Posted by Hani
:

 

어설픈 시간

 

1.
  얇은 티셔츠 한 장은 제가 봐도 무리수였다. 해가 질수록 더 그랬다. 여전히 이 시기의 날씨는 어려웠다. 계단을 오르던 하이바 리에프는 부는 바람에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선배들은 굳이 이 음침한 계단을 이용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학교 구조상,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동아리방부터 매점, 강의실까지, 추위에도 안전하게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매점을 가야하는 거면 이곳을 거쳐 갈 이유가 없었다. 예전에는 지나가면서 담배라도 태웠었지, 그것도 새 휴게실이 생기면서 쓸모를 잃었다. 이제는 처분 대상인 의자나 책상 따위나 쌓아두는 빈 공터였다. 그럼에도 리에프가 이 길을 고집하는 건 오기가 반, 포기할 수 없는 휴식이 반이었다.  

 좁은 학교였다. 동선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만 나서도 선배들이 끓었다. 그 건물에 있던 간이식당과 매점은 이용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였다. 거기다 리에프는 인사 앞뒤에 학번과 존칭까지 따박따박 붙여야 하는 체대생이었다. 그나마 남자선배는 인사나 잘하고 지나가면 됐다. 문제는 여자선배들이었다. 서로가 훤칠한 외모의 리에프를 붙잡아두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리고 그걸 다시 남자선배들에게 보이는 날엔 훈련은 고사하고 이유모를 비아냥을 얻어먹어야 했다. 대학이란 곳은, 고작 한두 살이 ‘선배’라는 호칭 하나에 교수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이었다. 가뜩이나 눈치 없는 체대생에겐 숨 돌릴 틈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 리에프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았다. 가장 먼저 무릎께까지 오는 책 더미가, 체육복이, 그리고 꽤 큰 등치의 남자가 보였다. 하마터면 끌어안고 있던 빵 봉투를 놓칠 뻔 했다. 헉, 하고 소리 냈다. 동시에 입 밖으로 그런 소리를 낸 자신에게 재차 놀랬다. 담배를 피우던 남자 또한 인기척을 느꼈는지 돌아섰다. 분명 작년 신입생 환영회 때 본 선배였다. 꽤 고학번이었을 거다. 웃으며 던지는 농이 하나같이 촌철살인이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리에프는 아직 착지하지 않은 왼발을 그대로 직행해야할지, 아니면 물러서야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남자의 부름이 빨랐다. 올라와. 괜찮아.

  분명 울상일거다. 자신의 표정은 뻔했다. 안 그래도 굽은 등이 더 숙여졌다. 큰 키에 걸맞지 않은 보폭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잊은 인사며, 어설픈 자세며, 반응이며, 실수한 것들이 떠올랐다. 조심스레 앞에 섰다. 남자는 이내 새 담배를 꺼내들 뿐 별 말이 없었다. 일단 선배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사죄의 말씀을 올리며, 처분을 기다리는 게 도리이자 순서였다. 

“쿠로오 테츠로”
“에?”
“내 이름. 넌 하이바 리에프. 맞지?”

  또 한 번 멋없는 삑사리를 냈다. 하도 방방 뛰어 대서 기억하고 있었어. 그날 너 술 마시고 토한 거 뒤처리 한 게 나다. 즐겁다는 듯 웃는 선배는, 쿠로오 테츠로는 리에프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직 제 몸을 다루는 법을 모두 익히지 못한 리에프는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휘청거렸다. 그래도 금방 제자리를 찾아 섰다. 눈치가 없으면 반응이라도 빨라야 했다. 가,가,감사함다. 뒤늦은 인사 뒤에 잠시 마가 떴다. 실눈 사이로 쿠로오가 번졌다, 다시 뚜렷해지기를 반복했다.

“너 나 되게 불편하지?”
“네.”

  이번에는 쓸데없이 빨랐다. 아까보다 목소리도 더 큰 것 같았다. 대답에 후회하는 만큼 얼굴도 그의 말을 고스란히 옮겨냈다. 그리고 그가 혼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사실은 표정 때문이라는 것을, 리에프는 아직 몰랐다. 실수야 어찌됐든, 고개를 숙인 리에프는 합당한 범위내의 결과가 떨어지길 바랐다.

“나도 이해해. 여기 나도 신입생 때는 자주 이용했거든.”

  의외의 말과 함께 쿠로오의 손이 리에프의 정수리에 닿았다. 리에프의 키가 180이 넘은 이후,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애정을 표시하려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막내인 그에게는 말 못할 아쉬움이기도 했다. 부드럽게 흐트러트리는 손길 사이로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선배들이 많이 괴롭히지? 웃음기 섞인 되물음은 리에프를 거의 울릴 뻔 했다.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봉지를 쥐고 있던 오른손이 느슨해졌다. 서서히, 떨어진 해의 추위도 느껴졌다. 

 “난 이제 내 학번이 부담스러워. 밖에서 보면 애들이 너무 고참 취급하거든.”

  슬며시 눈을 뜬 정면에, 쿠로오가 있었다. 난간에 기대선 그는 생각보다 리에프 가까이에 서 있었다. 본인이 말하고도 멋쩍었는지 짧은 시간에도 여러 표정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물건들로 눈길을 돌렸다. 리에프 역시 반쯤은 자동적으로 그의 시선을 따랐다. 쿠로오는 허리를 굽혀 비닐이 벗겨져 색 바랜 표지를 매만졌다. 이따금씩 들춰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책에서 올라온 거스러미들이 나풀거렸다. 사물함, 이제 슬슬 비워줘야 해서. 묻지 않은 말을 혼자서 푸는 쿠로오에게, 리에프 또한 성실히 수긍해주었다.

한 대 줄까?”

  불쑥, 들이밀어진 손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터는 알아서 쓰라는 듯 난간에 올려져있었다. 자신은 입에 댈 일이 없었던 물건이었다. 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다. 선배의 호의에 쥐게 된 물건에 리에프는 난감해했다. 왼손에 들린 담배를 한번, 이를 능숙하게 무는 쿠로오를 한번, 마지막으로 난간에 놓인 라이터에 시선이 이르렀다. 선배들이 썼던 일회용과는 다른, 반질반질하게 윤이 흐르는 투박한 외관의 지포 라이터였다. 앞뒤로 뭔가가 새겨져 있었지만 잘 보이진 않았다.

“지금이 딱 좋지. 네 시 반쯤.”

  쿠로오의 혼잣말이 다시금 리에프를 찾았다. 수업 끝나기 직전이거나 이미 끝난 후라 이 건물이 거의 비잖아. 리에프 또한 동의했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목소리를 따라 바라본 쿠로오는 생각보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즐거워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웃음기는 특유의 습관 아니면 예의일지도 몰랐다. 담배를 쥐거나 턱을 만지는 손에는 자신과 같은 굳은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옷차림은 평범했다. 그러나 계절을 잊은 자신의 센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였다. 이미 내려앉은 해는 리에프에게 반쪽자리 관찰만을 허락했다.

“너 담배 필 줄 모르는구나?”

  지나치게 집중해 있었는지 어느새 쿠로오가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것도 몰랐다. 들켜도 상관없는 사실이었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동시에 아직 어려서, 라고 놀리던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쑥스러움을 숨기기도 전에 쿠로오의 손이 다시 한 번 리에프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머리 위에선 알싸한 냄새가 떠다녔다.

2.
  열흘 뒤였다. 쿠로오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고, 리에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었다. 그의 옆에는 이전과 같은 책 더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책들의 상태나 쌓인 높이가 그가 학교에 머물렀고, 또 떠나있던 시간들을 짐작케 했다. 리에프는 쿠로오의 손짓에 잠시 고민했다. 그의 왼편에는 책이 쌓여있었고, 오른편은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망설이다, 책의 높이만큼 쿠로오에게 떨어져 서는 것을 선택했다.

  밤새 내린 비에 주변의 나무들은 꽃잎을 모두 떨군 상태였다. 갑자기 푹해진 날씨에 빗물이 고이진 않았다. 다만, 두서없이 떨어져 섞이고 뭉개진 꽃잎들이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무들 역시 녹색도, 붉은색도 온전하게 품지 못한 채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볍게 분 바람에는 축축한 흙냄새가 휩쓸려왔다. 곧 더워지겠다. 어중간한 모양새의 나무들을, 쿠로오는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 시간에만 오세요?”
“알바 때문에 지금밖에 시간이 안나.”
“쿠로상은 복학 안 해요?”
“그러게...”
“이제 졸업도 해야 하잖아요.”
“알바하면서 먹고 사는 게 너무 익숙해졌어.”
“몇 학기 남았어요?”
“한 학기? 아마 그럴걸?”

  꽤나 당돌한 질문의 연속이었다. 답을 주면, 문장을 채 마지치기도 전에 다음 질문을 해댔다. 리에프의 반응은 쿠로오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풍부하게 변했다. 미간을 찌푸리거나 입술을 내밀기도 하고, 양 볼은 부풀고 쪼그라들길 반복했다. 왼쪽으로 기울었던 고개는, 어느새 다음 질문에서는 오른쪽에 가 있었다. 가끔 손짓을 섞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굽은 등은 여전했다. 쿠로오 역시 리에프의 장단에 맞춰주었지만 대답은 불성실했다. 알바, 복학, 졸업. 이제 겨우 3학기차인 리에프와는 관련 없는 단어들이었다. 동시에 만약 내년부터 쿠로오와 함께 학교를 다닌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 그였다. 물론 고조된 기분은 ‘한 학기’라는 단어에 금방 가라앉았다.

“친구 것도 치워주기로 해서.”

  리에프는 아까부터 쿠로오가 세워둔 책 더미를 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했다. 반쯤은 변명의 투였다. 넌 이런 부탁 들어주지 마라. 웃는 쿠로오는 슬쩍 자신의 겉옷으로 짐들을 덮었다. 보쿠토 코타로. 낯익은 이름이 걸렸다. 들어본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신입생 환영회에서 쿠로오의 옆자리를 차지했던 선배가 있었던 것도 같다. 물론 짐작이었다. 이름과 함께 얼굴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이름도, 노력도, 쿠로오의 질문에 흘러갔다.

“오늘도 한 대 줄까?”

  장난기어린 쿠로오의 말에 지기 싫었다. 리에프는 꽤나 호기롭게 쿠로오의 호의를 받아 물었다. 그러나 빨아들이지도 않은 담배에 제대로 불이 붙을 리가 없었다. 꾸물거리며 입술에 매달린 담배는 자꾸 떨어질 것 같았다. 왼손이 그것을 지탱하느라 부는 바람은 신경 쓰지 못했다. 어색한 자세의 리에프는 자꾸만 꺼지는 라이터 불만을 재차 지필뿐이었다.

“그렇게 피는 게 아니라...”

  쿠로오가 갑작스레 가까워졌다. 동시에 확 타오른 라이터 불에 리에프는 하마터면 손을 델 뻔 했다. 담배를 뺏어든 쿠로오는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깊게 빨아들여 패인 볼과 덩달아 접힌 미간. 자잘하게 내리깐 눈이 만들어낸 찰나의 순간은, 리에프로 하여금 점점 고개를 숙이게 했다. 자신의 감정 표현엔 솔직했지만 타인에 대한 반응엔 서툴렀다. 그런 리에프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쉽게 불이 일었다. 신기했다. 같은 입인데, 손인데, 그 투박함까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자신은 미숙했다. 쿠로오는 직접 자신의 손을 리에프의 손 위로 겹쳤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도 담배가 끼워졌다. 쿠로오의 손은 자신의 손등을 모두 덮을 만큼의 크기였다. 어쩌면 더 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리에프의 등판에 닿은 쿠로오의 몸 역시 딱딱했다. 얇은 티셔츠는 숨김없이 한창인 사내의 건장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 부정할 수 없는 남성성에, 한순간이라도 쿠로오의 표정에 반응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 너 너무 키가 커서 힘들어.”

  큰 키의 리에프가 쿠로오에게 안긴, 꽤 우스꽝스러운 자세였다. 리에프의 마른 몸은 긴장으로 움츠러들었지만, 쿠로오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겹친 손을 리에프의 입으로 가져갔다. 입에 물어봐. 축축한 담배 끝이 민망했다. 그대로 쭉 빨아봐. 볼 한가득 연기를 머금고 뿜었다. 코가 아려왔다. 터지는 기침은 억지로 참았다. 아니, 머금지만 말고 숨을 들이 마시란 마랴. 응, 그렇지, 그렇게. 쿠로오의 정정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리에프의 시도는 멋지게 마무리되진 못했다. 

  가장 먼저 안을 모두 게워낼 것 같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거친 기침은 목구멍을 긁어댔다. 코끝은 아리다 못해 매웠고, 반사적으로 눈물이 맺혔다. 입안에는 기분 나쁜 쓴맛이 맴돌았다. 배도 아팠다. 고개를 든다고 해서 상태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어지러웠다. 가만히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세차게 머리를 흔들면 눈앞이 더 흔들렸다. 어느새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지, 쿠로오가 내뿜는 연기에 눈앞이 흐렸다. 그가 잡히다, 말았다 했다. 사실 연기 탓인지, 똑바르지 못한 시야 탓인지 구분이 안 갔다. 어쨌든 쿠로오는 웃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쿠로오였다. 리에프 역시 그가 빌려준 팔을 거절하지 않았다. 쿠로상, 이게 뭐에요? 횡설수설한 와중에 아무 말이나 뱉었다. 뭐긴 뭐야. 담배지. 쿠로오의 대답은 여전히 불성실했고, 여전히 친절했다.

3.
  세 번을 더 마주쳤고, 세 번을 더 마주칠 수 있었던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리에프가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쿠로오는 이제 막 새 담배를 꺼내던 참이었다. 발밑에 떨어진 꽁초들은 그가 기다린 시간을 알게 했다.

“다행이다. 못 볼 줄 알았어.”

  저번 주, 이번 주 내내 학교 왔었는데. 어색한 웃음의 쿠로오는,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움츠러든 리에프의 어깨에 조금은 힘이 들어갔다.

“잘 지냈지?”
“아팠어요. 조금.”
“살이 내리긴 했네.”

  쿠로오의 손이 리에프의 볼에 닿았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리에프는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동시에 과도하게 반응한 자신을 원망했다. 그가 쿠로오에게 보이고 싶은 반응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쿠로상 보면 마음이 이상해요. 리에프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프다는 것은 핑계였다. 복잡한 마음에 뒤척이면서 2주나 허비했다. 친구의 이야기라며 주변에 물어도 보고, 인터넷도 뒤졌다. 결국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냥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쿠로오가 친절한 게 짜증났다. 선배인 것도 불편했다. 항상 웃는 낯이었는데, 단 한 번도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학교에 오면 그부터 떠올렸다. 하루에 몇 번이고 그곳에 들렸다. 쿠로오가 오지 않는 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딱히 약속을 한 적도 없었다. 짐을 모두 치웠다면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리에프는 계단을 올랐고, 그때마다 실망했다. 일단 리에프는 이 감정을 ‘궁금하다’로 정했다. 보고 싶은 것으로 정의하기엔 본인이 억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도 처음에는 학교에서만 그랬다. 견딜 만했다. 이때까지는 쿠로오의 생각을 쉴 수 있는 ‘틈’이 있었다. 그런데 기대와 실망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됐다. 지금은 어디서든 그랬다. 이제는 틈이 생기면 쿠로오를 떠올렸다. 질투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질투했고, 원망의 대상이 없음에도 원망했다. 틀어박힌 2주 동안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자신이 쿠로오의 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쿠로오 역시 리에프에게 번호를 묻지 않은 것에 침울해했다. 리에프에게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 또 여기로 왔다. 쿠로상, 저 이상해요.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보다 어른인 쿠로오는 답을 줄 것 같았다.

“나 학창시절 별명이 고양이었거든.”

  쓸데없이 생각이 길었다. 리에프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담을 타 넘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검은 털에 꼬리에만 눈이 내렸다. 몸을 바짝 낮추고 앞으로 기는 것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다. 쿠로오는 고양이를, 리에프는 그런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근데 굳이 동물이어야 한다면 역시 날 수 있는 게 좋겠어.”
“아니에요!”

  미묘한 표정의 쿠로오가 돌아보았다. 지금 보니 살이 내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쿠로오였다. 간만에 정면으로 마주한 그의 얼굴. 리에프는 또 지나치게 허둥거렸다.

“쿠로상은...고양이가 잘 어울려요.”

그제야 뾰족한 눈매와 입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안심했다.

“쟤, 니가 가끔이라도 챙겨줘.”

  그리고 이거 너 가져. 은근히 책임을 떠맡긴 쿠로오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리에프의 손바닥에 놓인 것은 쿠로오의 지포 라이터였다. 리에프는 당황했다. 연신 라이터와 쿠로오를 번갈아보았다. 나 이제 담배 끊으려고. 이번에도 쿠로오가 선수를 쳤다. 원래 눈치가 빠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고작 몇 년 더 산, 아직은 새파란 어른의 직감일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진심과 인사치레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리에프에게는 그저 신기한 대처였다.

  그럼에도 쿠로오의 말은 적절한 답이 되어주지 못했다. 움찔거리는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인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또 놓칠 것 같았다. 지금쯤 쿠로오는 먼저 자리를 뜨곤 했다.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는 쿠로오. 뒷걸음질 치며 손을 흔드는 쿠로오. 그리고 곧 등을 보이는 쿠로오. 리에프는 조급했다. 붙잡는 손이 빨랐다. 부르는 말은 나중이었다. 쿠로상,

“안 와요?”

  한 번 더 말했다. 이제 여기 안 와요? 리에프 본인도 놀랐다. 가장 먼저 들이밀어진 말은, 자신의 진심도, 쿠로오의 번호도 아니었다. 다음을, 혹은 그 다음을 기약하는 질문이었다.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걱정했다. 그가 왜 복학하지 않는지, 남아도는 사물함을 굳이 비우는 건지, 아직은 필요할 책들을 처분하는 건지, 그러니까 왜, 학교를 그만두는 건지. 마주치는 날이 늘고, ‘이상한’ 마음이 커질수록 더 묻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리에프는 쿠로오를 붙잡을 수 있는 어떠한 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에게는 명분이 없었다. 고작 몇 번을 마주친 사이였다. 쿠로오에게 그는 한참 어린 후배정도일 것이다. 잘해봐야 후배 앞에 친하다는 말이 붙을 뿐이었다. 리에프의 표현대로 억울한 일이었다.

  쿠로오는 그의 질문을 이해한 것 같았다. 거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되도록 천천히, 리에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아마 자신은 울상일 것이다. 울지도 몰랐다. 처음에도 그랬다. 덜 여문 청년은 즐거움보다 슬픔을 숨기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어설픈 시간은 무엇을 밝게 비추지도, 어둡게 가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넘치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의 진심을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4.
  일본 배구 유망주 보쿠토 코타로 사망. 경기 도중 사고. 1년여 간의 식물인간 생활. 가족의 결단. 기증. 의 단어들. 아무도 보지 않을 스포츠란 구석을 채우고 있는 기사. 단 몇 줄의 글에는 사진조차 실리지 않았다. 리에프는 끝까지 보쿠토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생김새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야 살랑거리던 꼬리를 간신히 묶어두고 있던 것이 새의 껍데기였음을 확답 받았기 때문이다. 리에프는 여전히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질투를 느껴야 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도망간 새끼를 찾는 것도 그만 두었다. 제가 있을 곳을 찾아간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감정의 원인을 찾아 원망하고 싶었다. 그러나 애초에 누구를 탓할 만큼 리에프는 모질지 못했다. 원망을 설움으로, 그리고 다시 그리움으로 바꾸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유일한 자로서 조용히 그의 죽음을 애도할 뿐이었다.

 


고양이가 바닥에 몸을 뉘였다. 떨어진 새는 외롭지 않았다.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에쿠로] 기다리는 오늘  (0) 2017.07.28
[히지긴] 시작의 끝  (0) 2017.01.11
[히지긴] 추락하는 무게 (현실AU)  (0) 2016.01.06
[히지긴타카] 반쪽씩  (0) 2015.12.13
[타카긴] 벌레들  (4) 2015.10.24
Posted by Ha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