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무게 (현실 AU)
추락하는 무게를 한 손으로 붙잡는 건 버거웠으나 막상 손을 놓자 떨어지는 건 순간이었다. 땅에 닿는 건 쉬웠다. 생각처럼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피는 조용하게 배어 나왔고 그의 몸은 고작 한두 번 경련할 뿐, 이내 멈추었다. 나는 건물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 년 간의 다툼이 결국엔 그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죽은 이도 지르지 않은 비명을 그들이 대신 했다. 누군가는 구급차를 부르는 것 같았다. 급하지 않게 걸어 내려갔다. 금세 몰려든 이들이 만든 몇 겹의 벽은 겨우 그의 목덜미와 손목, 운동화 정도만을 보여주었다. 죄송합니다. 첫 번째 구경꾼은 순순히 물러났다. 잠시 만요. 두 번째 여고생들은 의아해하며 수군거렸다. 제가 보호자입니다. 그제 서야 인파의 숲이 술렁거리며 안타까움이나 탄성과 같은 소음들을 토해내며 물러섰다.
능숙하게 그의 몸을 추스렸다. 먼저 돌아간 고개를 바로 잡아 주었다. 반쯤 뜬 눈은 그 때 감겼다. 제각기 떠도는 두 팔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신 올라간 티셔츠를 내렸다. 꽤 오랜 시간 수면제와 진정제로 늘어진 그를 챙겨왔기에 그리 어렵거나 번거로운 일은 아니었다. 여긴 너무 시끄럽다. 둘 만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 말을 하자마자 신기하게 눈물이 터졌다.
꿈은 항상 여기까지다. 대신 누워있는 긴토키에게 건네는 말은 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바뀌는 말이나 장면을 의식할 때도 있고 오늘처럼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다. 신기한 것은 붙잡아도 질책하지 않을 꿈에 그의 죽음을 막아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 사실이다. 똑같은 꿈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그가 죽었을 때 뭐라고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식은땀이 마르면서 급격하게 추워졌다. 의자위에 걸쳐둔 겉옷을 빼들었다. 더운 물을 마셨다. 참다못해 약을 먹었다. 그래도 달아난 잠은 쉽게 찾아 들질 않았다. 왼손목이 아팠다. 반복해서 하얗게 불거진 흉터를 매만졌다. 이것 또한 그가 승리한 증거라면 증거였다.
“우울증. 그거 별 거 아니래.”
처음에는 둘 다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다들 조금씩 있는 거래. 초조해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어디선가 주워들은 잡다한 충고들과 웃음 띤 위로뿐이었다. 평소처럼 대하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자 마음먹었다.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끼니를 걸러도 타박하지 않았다. 집안일이 모두 내 몫이 되어도 별 불만 없이 해 나갔다. 동거를 한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날들이 늘어났다. 이제 출근 전과 퇴근 후, 그의 코나 입가에 손가락을 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말이지 ‘생존확인’이었다.
그런 긴토키가 갑작스럽게 복학을 결정한 것은 진단을 받은 지 3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조금 더 고민해 보자고 그를 설득했지만 상의 전에 이미 서류를 제출한 후였다. 허락해 줄 거지? 나 이제 안 아파. 과도하게 들뜬 그에겐 우울증이라는 병력조차 무색해 보였다. 서서히 말과 움직임이 늘었다. 스스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날도 있었다. 학교생활도 곧잘 해나가는 듯 했다. 가끔씩 이전과는 다르게 지나칠 정도로 흥분하거나 화를 냈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이전처럼 사랑한다고도 했다. 너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그를 살아있게 한 거라고도 했다.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웃는 그를 보면 누구에게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꾸로 밟아가 그가 화장실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기까지 다시 5개월이 걸렸다.
옮긴 병원에서는 그가 우울증이 아닌 조울증이며 이전에 항 우울제가 듣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극단적인 증세를 자주 보일 수 있다며 그의 반복될 행위를 돌려 말해주었다. 실제로 한 동안 지속되었던 조증은 최악의 상황을 예고한 전조일 뿐이었다. 뭐든 첫 시작이 어렵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후는 불안함과 안도, 분노와 설득의 연속이었다. 내가 그에게 무릎을 꿇은 것처럼 그도 나에게 빌었다. 날 죽게 해줘. 너만 허락해주면 돼. 긴토키의 소원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단순했다. 약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의 손목에는 흉터가 늘었다. 그를 묶어두거나 방에 가둬둔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혀를 깨물려고 했다. 그의 소지품은 될 수 있는 대로 모두 버렸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있음을 깨달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최대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밖에 있는 시간보다 그의 마른 몸을 끼고 있는 날들이 늘었다. 그렇게 그를 안고 있을 때, 맞닿은 고동들이 엇박으로 뛰다 이내 맞춰지면서 튀어 오르는 평온함은 우리의 상황을 잊게 할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찰나는 그의 말 한마디면 쉽게 수그러들었다.
“내일은 눈이 안 떠지면 좋겠다.”
“또 헛소리한다. 그런 소리 좀 그만해.”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어."
“차라리 수면제를 먹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살아만 있어줘. 항상 같은 말로 끝났다. 이에 대한 긴토키의 대답 또한 정해져 있었다. 내가 죽지 못하는 건 너 때문이야. 그러나 생의 이유도, 죽음의 조건도, 모두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섣불리 나를 위해 살아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그가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길 바랐는지는 모르겠다. 남겨진 이들 특유의 쓸데없는 고민일 것이다. 다만 그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이 내가 준 선물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계속해서 손을 잡고 있었다. 사랑한다고도 했다. 너 때문에 행복했다고 했다. 망설임 없이 낙하하던 것도 선명하다. 그리고 허락의 말을 후회하며 중력을 따라 계속해서 기우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을 때, 그는 다시, 끝까지 붙잡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오늘은 확실한 꿈이다. 별다른 다툼도, 그를 붙잡고, 애원하고, 망설였다 다시 울며 매달리던 수어번의 과정도 없었다. 그날은 이렇게 차분하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하지도 않았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그는 난간 위로 올라서기 직전이었고 나는 계단 아래에서 입맞춤을 끝낸 직후였다. 이제 곧 나 또한 따라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잠시 숨을 멈췄다 그가 떨어지면, 내가 놓아주어야 했다. 매번 그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그 때는 묻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반복되는 꿈에서도 듣지 못한 대답이 있다.
“내가 잘한 걸까?”
내가 필요한 것은 위로나 사랑 고백 따위가 아닌, 살아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면죄부였다. 환영에 매달리면서까지 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그를 ‘놓았다는’ 사실은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긴토키는 자신이 죽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나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죽었다. 내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결국엔 내가 그를 죽였다. 애써 외면해온 꿈에서조차 그것만큼은 유일하게 불변하는 장면이었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그가 원했을지도 모르는 결말을 물었다.
“아니면 나도 같이 죽을까?”
돌아본 그는 웃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이번 연성은 왠지 모르게 너무 오래 걸렸어요...심하게...고작 에이포 세 장인데 낑낑거리면서 썼네요. 흑 이런데서 실력 차이가 나나 봅니다.
+ 긴토키를 따라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매번 죽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히지카타. 그리고 그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죄책감에 항상 악몽에 시달림. 그리고 결국 수없이 하는 질문에 꿈속의 긴토키는 물론 본인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 결국 히지카타카 감당해야 하는 건 긴토키의 무게뿐만이 아닌 것....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신은 원하는 대로 했으면서 그 이유를 모두 히지카타에게 돌린 긴토키가 어찌 보면 정말 잔인한 사람일수도...
+ 저도 포카포카한 히지긴 써보고 싶고요. 달달한 타카긴 써보고 싶습니다....그런데 취향 진짜 오져서 이런거 말고는 뭐가 1도 안나오네요... 흑흑
+ 아 그리고 존잘님 어떤 분이든 히지긴 온리전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ㅠㅠ 타카긴 교류전도요ㅠㅠㅠㅠ 긴수 온리 끝나고 여름쯤이면 딱 좋지 않나요? 제 생각인가요? 네? 다들 원하시는거죠?ㅠㅠㅠㅠㅠ
+ 본격적인 원고 전 손풀기용이라 당분간은 티스토리에 뭐가 안 올라올 수도 있겠네요. 그럼 긴토키 온리전에서 봬요! 뿅!